주오구 니혼바시무로마치 나가사키야 터

국경을 뛰어남은 사제간의 정 가쓰라가와 호슈

네덜란드인과 교류한 가쓰라가와 호슈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기 이름을 듣다

국경을 뛰어남은 사제간의 정 가쓰라가와 호슈

(voive actor) D. Shin

D. Shin

도쿄 주오구 니혼바시 무로마치에 ‘나가사키야의 터’라는 비석이 있습니다. 이곳은 에도시대에 약재도매상인 나가사키야가 있었습니다. 이 나가사키야는 도쿠가와 정권에 인사를 하러 오는 네덜란드인이 머물던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도쿠가와 정권기의 일본은 1850년대에 무역을 시작하기까지 해금 정책(쇄국)을 채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외국인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청나라, 조선, 네덜란드와는 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역이 가능한 지역의 나가사키에 만든 인공섬, 데지마 뿐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인이나 중국인은 데지마를 벗어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네덜란드인이 에도성에서 쇼군에게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은 유일한 예외였습니다. 1776년에도 네덜란드인의 에도성 방문이 이루어져 나가사키야에 네덜란드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때, 일본인과 서양인의 교류가 있었습니다.일본에는 외국의 서적을 통해 서양의 지식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1776년경에는 서양의 의학서 등을 통해 최신 의학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늘어났었습니다. 이렇게 서양 학문을 배우는 사람들을 ‘난학자’라고 부릅니다. 이 난학자를 중심으로 나가사키야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서양의 지식을 배우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곤 하였습니다.이때, 일본의 난학자 두 명이 나가사키야를 찾아왔습니다. 한 명은 나카가와 준안, 다른 한 명은 가쓰라가와 호슈. 나카가와 준안은 아직 사전도 없었던 시절에 서양 의학서 <타펠 아나토미아>를 번역한 <해체 신서> 출판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가쓰라가와 호슈는 대대로 도쿠가와 쇼군의 의료를 담당하던 집안 출신으로 해체 신서의 번역작업을 도왔습니다. 또, 가쓰라가와 호슈는 일본에서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외과수술의 공부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최신 의학 기술과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나가사키야에 온 것입니다. 이곳에서 나카가와 준안과 가쓰라가와 호슈는 네덜란드 상관의 의사 툰베리를 만나게 됩니다.나카가와 준안, 가쓰라가와 호슈 두 사람은 툰베리에게 열심히 질문하였고 툰베리도 두 사람의 열의를 느껴 최신 의학 기술과 네덜란드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잡담 때에는 사전 없이 해체 신서를 번역한 이야기를 하는 등 툰베리를 크게 감동하게 했습니다.나가사키야에서의 교류는 수개월에 불과하였습니다.하지만 툰베르크에게 이 수개월은 잊을 수 없는 날들이었습니다.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에서 서양의 학문을 배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절망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번역작업을 통해, 의학서를 일본어로 번역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에 감격하였습니다. 툰베리는 이후 나가사키를 떠나 유럽으로 돌아갔지만, 일본에서의 만남을 책으로 만들어 유럽에 소개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일본의 뛰어난 학자이자 친구인 나카가와 준안과 가쓰라가와 호슈에 대한 이야기도 썼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가쓰라가와 호슈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신의 칭찬을 듣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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